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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혹시 ‘T’세요?”

[칼럼] “혹시 ‘T’세요?”

  • 기자명 이유미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HK교수
  • 입력 2024.02.2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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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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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가 어떻게 되세요?” 최근 기사에 따르면 취업 면접장에서도 MBTI를 묻는다고 한다. 이러한 MBTI에 대한 관심은 멕시코 언론에서 현대 한국인의 점성술이라 꼬집을 만큼 선풍적이다. 과거에는 혈액형에 대한 맹신이 있었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MBTI에 대한 관심과 확인은 정말 그것을 믿어서라기보다는 타인에 대한 나름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본능적 물음일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타인은 가족일지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기 때문에, 타인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다양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본능적 작업이기도 하다. 타인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이 다양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고, 이러한 갈등은 다양한 결론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위험 관리 차원에서 타인의 정보를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객관적 검사와 유형 정리가 사람들에게는 매우 신뢰감 있게 다가오곤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을 통해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과거 혈액형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에는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가 존재했을 만큼 ‘B형’은 ‘이기적’이라는 말로 부정적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MBTI의 시대에 ‘T’유형은 판단의 근거를 이성에 두고 논리적이고 분석이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판단하다고 하여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부정적 인식을 이야기할 때 주로 언급되곤 한다. 이러한 검사 결과가 이 유형의 모든 사람을 완전하게 대변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두 유형 ‘B형’과 ‘T’유형은 모두 타인의 입장에 서지 못한다는 점이 중요한 쟁점으로 보인다. 이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강하게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기술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 사회의 소통형 AI 기술은 단방향 형태이건, 쌍방향 형태이건 모두 공감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키오스크의 등장은 ‘감정노동자’의 상처를 덜기 위한 방법이라는 점도 중요 요인이었고, 소셜 로봇의 개발은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의 외로움을 덜기 위한 도구로써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기술의 차원에서 볼 때 로봇이나 AI와의 소통의 가능성과 능력이 매우 발달하고 있지만, 우리가 이 기술의 발달을 통해 외로움과 비공감의 문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기술의 발달이 외로움과 비공감의 문제 해결에 긍정적이지 못할 수 있음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대화는 대화의 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맥락을 만들어 가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발전시키면서 관계도 생성해 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과정에 함께 참여한다는 것은 화자와 청자의 역할이 고정된 상태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 모두 화자이면서 청자라는 공동의 역할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이 과정은 협의와 조율이 중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발전적 관계와 맥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인간의 대화와 달리 AI나 로봇을 통한 대화는 화자나 청자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고, 상호 맥락을 형성하면서 관계를 발전시켜 가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가 AI나 로봇과의 대화에서 위로나 위안을 얻는 이유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대화 참여자와 대화를 조율하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가지는 피로감을 AI나 로봇과의 대화에서는 느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대화, AI나 로봇과의 대화, 또는 기계를 매개한 대화 방식의 차이는 어떤 대화 방식이 더 뛰어나고 의미있다고만 주장하기 어렵다. 변화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만큼 관계의 형태와 관계에 대한 깊이도 달라지고 있다. ‘관계문맹’을 이야기할 만큼 ‘관계’는 이제 자연스런 현상이기보다는 배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 현상은 또 다른 진화를 의미하기에, 바름과 그름의 절대적 기준을 가지지는 않는다. 아날로그 시절을 지나 기술 진화의 급격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로서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 세대가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변화하는 이 시대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다음을 전망해 볼 뿐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 낼 새로운 관계를 더 건강하게 하기 위한 리터러시는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기존의 집단 사회와 같은 관계 형태를 요구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시대에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안정적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이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적극적 노력은 관계 이탈로 인한 인간 행복의 소실을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전문가의 기고문으로 본지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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