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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가 드리운 그림자… AI ‘치킨게임’ 시작되나
  • 김동원 기자
  • 기사입력 2023.03.17 15:16

    “우리 챗GPT나 GPT-4 사용해요”, 빅테크 기업에 종속되는 AI 기업들
    소비자에겐 다 비슷한 제품, ‘기술 경쟁’ 아닌 ‘가격 경쟁’ 풍조 우려

    • GPT-4가 등장하면서 AI 기업간 기술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픈AI
      ▲ GPT-4가 등장하면서 AI 기업간 기술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픈AI

      미국 인공지능(AI)연구소 ‘오픈AI’가 지난 14일(현지시간) GPT-4를 공개했다. GPT-3.5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AI 모델 ‘챗GPT’를 공개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GPT-4는 기존 챗GPT에 비해 성능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된다. 인식과 추론 능력이 향상됐고, 사용자가 입력한 이미지를 인식하는 멀티모달 기능이 추가로 탑재됐다. 실제로 GPT-4는 미국 변호사자격 시험을 상위 10% 성적으로 통과했다. 기존 챗GPT가 하위 10% 성적을 낸 것과 비교되는 성과다. 생물학 올림피아드에서도 상위 1% 성적을 내며, 챗GPT(하위 31%)보다 탁월한 성과를 냈다.

      이번 GPT-4 등장에 일부 AI 기업들은 기술 향상에 놀라운 평가를 보내면서도 기업 경영 측면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픈AI가 챗GPT에 이어 GPT-4라는 높은 능력의 AI 모델을 유료 버전의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로 제공하면서 이를 활용해 비슷한 기술의 AI 챗봇을 만드는 기업들이 증가, 추후 AI 시장에 기술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을 하는 ‘치킨게임’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다.

      ◇AI 스타트업, 빅테크 기업의 고객사 되다

      GPT-4와 같은 초거대 AI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개발하긴 어려운 모델로 꼽힌다. 초거대 AI는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인프라를 기반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한 AI 모델이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함으로써 단순히 언어만 학습해도 언어모델 안에서 논리 구조가 생긴다는 것을 입증했다. 구글의 초거대 AI ‘패스웨이’를 응용해 만든 ‘미네르바’가 대표 사례다. 미네르바는 수학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모델이다. 간단한 수학 문제부터 과학 문제 풀이, 수학 증명 등을 말로 설명한다. 그런데 구글은 이 모델에 수학 문제를 학습시키지 않았다. 단순히 기호들만 학습시키고 계산하는 방법만 알려줬다. 하지만 이 모델은 7800억 개 단어를 사용해 훈련하고 4300억 개의 매개변수(파라미터)를 갖춘 패스웨이로 만든 덕분에 그 안에서 저절로 논리 구조가 생겨 수학 문제를 설명했다.

      이같이 놀라운 성과를 낸 초거대 AI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입장에선 ‘그림의 떡’이었다. 컴퓨팅 자원 구축 등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초거대 AI를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개발한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는 128대 서버에서 총 1024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이용해 데이터를 학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GPU ‘A100’이 약 3000만 원인 점을 가정하면 GPU 구축에만 300억 원가량이 투입된 셈이다. 신정규 래블업 대표는 “미네르바를 훈련한다고 가정하면 저전력 반도체인 구글의 ‘텐서프로세서유닛(TPU) v3’를 활용해도 구글 클라우드에 약 304억 원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며 “모델을 생성하기까지 드는 금액만 이 정도이고 훈련까지 하게 되면 이 금액의 약 3배 정도가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초거대 AI를 직접 개발하기보단, 만들어진 모델을 API 형태로 구매해 사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자체 기술에 챗GPT나 GPT-4 등의 기술을 접목해 고객사에 맞춤형 대화형 AI 서비스를 제공한다. 초거대 AI는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져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데이터를 학습하지 않으면 기업 전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렵고, 워낙 모델이 크기 때문에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틈새를 공략해 B2B(기업간 거래) 시장에 제품을 서비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는 “초거대 AI는 수능처럼 평생 한 번 보는 중요한 시험을 위해 최대한 많은 공부를 한 후 다음부턴 그 지식을 계속 사용하는 모델”이라며 “추가 학습을 하려면 또 다른 중요한 시험을 보듯 최대한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해 유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거대 AI는 많은 데이터를 학습한 만큼 사람과 모든 분야에 걸쳐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서비스로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B2B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B2B는 각각의 기업마다 요구하는 서비스가 다르므로 여기에 특화된 전문적인 AI를 공급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소비자 눈엔 다 같은 기술… “AI 챗봇 치킨게임 시작”

      초거대 AI 틈새는 높은 언어모델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등이 가져가고 있다. 포티투마루, 클라썸, 올거나이즈, 스켈터랩스 등이다. 이들 기업은 최근 자체 언어 기술에 챗GPT의 기반 모델인 GPT-3.5를 접목한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챗GPT 등장 전부터 자연어처리(NLP), 기계독해(MRC), 음성인식 등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며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챗봇을 준비해왔다는 점이다. 클라썸 관계자는 “최근 선보인 AI 도트 2.0은 챗GPT의 기반 모델인 GPT-3.5를 접목했다”면서 “챗GPT 유행으로 마케팅 효과가 큰 것은 맞지만, 사실 이 제품은 챗GPT 등장 이전부터 준비해온 기술”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각 회사가 준비해온 기술이 GPT-3.5(챗GPT)나 GPT-4를 접목하게 되면서 각사의 기술력이 소비자 눈에는 동등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GPT-4의 성능이 워낙 뛰어남에 따라 기반 기술이 없어도 AI 챗봇 등을 쉽게 구현할 수 있어, 실질적인 기술력이 없는 신생 업체들이 우후죽순 쏟아질 우려도 있다.

    • GPT-4는 기존 GPT-3.5 성능을 상회한다. /오픈AI
      ▲ GPT-4는 기존 GPT-3.5 성능을 상회한다. /오픈AI

      AI 언어모델 개발 분야에 종사하는 관계자는 “오픈AI의 파괴력 높은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소비자 시선에선 다 똑같은 기술로 느껴질 수 있는 대화형 AI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기술 공급사가 아무리 기술력이 다르다고 발표해도 소비자는 결국 저렴한 제품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결국 AI 챗봇 시장이 치킨게임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복 제네시스랩 대표는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AI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면서 “KC인증처럼 AI 제품에서도 기술력, 신뢰성 등을 인증하게 하고, 소비자가 이러한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환 씽크포비엘 대표도 “챗GPT 등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만큼 인간 보편의 존엄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AI 신뢰성 검증’과 ‘데이터 편향 측정’ 같은 검증 기술이 병행‧발전해 올바른 AI 사용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빅테크 기업은 ‘건물주’, AI 중소기업은 ‘소상공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간 AI 가격 경쟁이 심화될 때 이득을 보는 곳은 오픈AI와 같은 빅테크 기업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빅테크 기업의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많아져서다. 일례로 빅테크 기업은 건물주, AI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그 건물에 세를 내고 장사하는 소상공인으로 볼 수 있다. 한 골목에 치킨집이 많아 서로 가격을 내리거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며 경쟁할 때 이와 상관없이 이득을 보는 건물주처럼, AI 빅테크 기업도 API 등을 판매하며 시장 경쟁과 상관없이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AI 스타트업 대표는 “모든 기술을 오픈해 공급하겠다는 오픈AI가 이제는 GPT-4를 유료 버전으로 제공하며 기술을 오픈하지 않고 있다”며 “GPT-4 등 초거대 모델 개발에 워낙 많은 돈을 투자하기 때문에 이제는 수익 창출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오픈AI나 구글의 기술들은 AI 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왔는데, 이번 GPT-4 유료 공개는 AI 분야에 수익 창출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앞으로 AI 사업에 자본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이 문제를 줄이기 위해 챗GPT와 같은 규모인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갖춘 초거대 AI를 개발하고 있다. 정부 및 국내 연기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해 8월부터 민간기업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 기반 초대형 언어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투입 비용은 총 110억 원 정도로, 2025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하지만 구글이 1조 개 이상의 파라미터를 갖춘 초거대 AI를 출시하는 등 빅테크 기업의 기술개발 속도가 워낙 빨라 정부 주도 초거대 AI 모델의 효용성이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따라서 AI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초거대 AI에 무조건 의존하기보단 제공하는 서비스에 부합하는 경량화 모델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자체 기술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초거대 AI의 파라미터를 늘리는 것은 시간과 자본만 있으면 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빅테크 기업들은 모델 경량화보단 키우기에 더 집중할 것”이라며 “AI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모델 경량화와 이를 통한 실질적인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정규 래블업 대표는 “초거대 AI 모델을 실질적으로 사용하려면 모델을 압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선 필연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AI를 실제로 사용하고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선 이 방법보단 적정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신동호 무하유 대표는 “대기업에서 목표로 하는 시장과 중소기업이 목표로 하는 시장의 크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 입장에선 작더라도 당장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에 전문성을 키워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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