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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2025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순차적으로 보급
시기상조 vs. 공교육 변화 시발점 찬반양론 팽팽
“사교육선 AI 사용 활발, 해외 문의 이어져 기술 수출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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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학교에는 순차적으로 AI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AI 디지털 교과서는 2025년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교 공통·일반선택 과목에 도입된다. 이듬해에는 초등학교 5, 6학년과 중학교 2학년에, 2027년에는 중학교 3학년으로 도입이 확대된다. 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2027년까진 종이 교과서를 함께 사용하고, 2028년부터는 AI 디지털 교과서로 전면 대체될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교과서는 학생마다 내용이 다른 ‘맞춤형 교과서’가 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교과서 안에 담기는 ‘연습문제’ 등은 그간 학생들이 문제를 푼 결과에 따라 난이도를 달리해 제공한다. 학생이 취약한 부분을 찾아 개념을 보충 설명하고 유사한 문제를 계속 제공해 숙달시키는 방식이다. 데이터는 교사에게 그대로 전송한다. 이를 통해 교사는 학생들의 개별 수준을 정확히 알고 이에 맞춘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AI 도입 ‘시기상조?’… 교육부 “순차적 도입할 것”
교육부의 이번 발표에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AI 보조교사로 인해 공교육에서도 진정한 개인 수준별 맞춤 교육이 가능해진 것이라는 평가와 동시에 우려 역시 나오고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교사 이해도와 필요한 교보재가 부족하고, AI 기술이 공교육에 들어와도 되는지 검증이 안 된 상태에서 교육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의견은 기간과 기술 신뢰 부족이다. 교육부는 당장 2년 뒤인 2025부터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교사가 적다는 주장이다. 교육부가 밝힌 계획에 따르면 2024년까지 AI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된 연수를 받게 될 교사는 해당 과목 교사의 40%다. 교과서가 본격 도입되는 2025년에 연수를 마친 교사는 70%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화형 AI ‘챗GPT’ 인기에 따른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초거대 AI 등 선진 기술이 대거 투입된 챗GPT도 오류를 범하는데, AI가 평가한 학생들의 수준을 그대로 신뢰해 교육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디지털 기기에 흥미가 있고 없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를 공교육에 도입하게 되면 또 다른 학습격차를 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근무하는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디지털 기기에 관한 관심과 이해도가 제각각”이라며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수업 적용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부의 발표는 지식 전달과 같은 기본 교육은 AI에 맡기고, 교사는 맞춤형 수업을 진행하라는 의도로 파악된다”며 “한 학급에 30명 정도의 학생이 있는데 정규 수업시간 내에 학생마다 수준별 학습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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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이 문제들을 준비 기간과 민간 기술 활용 등을 통해 풀어갈 계획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하지 않고 2027년까지 종이 교과서와 사용을 병행하며 현장 혼란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AI 기술에 관해선 이미 기술 검증이 끝난 민간과의 협력 가능성도 내놨다. 에듀테크 산업을 육성하고 협력해 신뢰성 있는 교육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방안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가 주력해야 하는 부분은 뒤처진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보살피는 것”이라며 “디지털 교과서도 이쪽에 우선순위를 두고 개발해 순차적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AI 에듀테크, 사교육계에선 이미 기술 검증… 해외 문의 잇달아
사실 이번 교육부의 발표는 사교육 시장에선 생소한 내용이 아니다. 이미 사교육에선 AI를 활용한 시험 문제 제작과 수준별 풀이 과정 학습 등이 사용되고 있다. AI를 수준별 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여부가 이미 검증된 것이다. 이런 기술은 인도네시아 등 다른 국가에서 관심을 두고 협력 제안도 이어지는 중이다.
국내 AI 에듀테크 기업 ‘렉스퍼’는 자체 개발한 영어 문제 자동생성 AI 모델 ‘ATM(AI Test Maker)’으로 지난해 비상교육의 영어능력평가 시험 ‘VPEAT’을 제작했다. ATM은 객관식, 주관식 시험에 나오는 문제 유형 중 실제 수능과 학교 내신의 핵심 유형들을 만들어내는 AI다. 지문에서 빈칸이 들어갈 위치를 찾아 여기에 들어갈 만한 단어나 구절 등의 객관식 보기를 만들어낸다. 렉스퍼는 이 모델을 만들기 위해 학년별로 나오는 영어 단어와 구절 등을 빅데이터화 해 일일이 분류했다. 이를 통해 AI가 수준별, 학년별 문제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교과서 문제 등을 AI로 제작할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형종 렉스퍼 대표는 “3월 인도네시아 교육부 차관에게 독자 AI기술을 소개할 예정”이라며 “아직 밝힐 수 없지만 남아시아 국가와도 공교육 분야에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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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걱정하는 많은 학생의 수준별 개인 학습을 지원하는 기술도 있다. 매스프레소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앱) ‘콴다’가 대표 사례다. 콴다는 교과서나 문제집의 문제를 촬영하면 풀이 과정과 유사 문제 등을 제공한다. 문제 풀이로 이해가 못한 학생에게는 강의 동영상도 제공한다. 이 앱은 지난해 기준 국내외 사용자 75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만큼 쌓인 데이터가 많다. 실제로 검색된 누적 문제 수는 50억 건으로 1초당 127건의 문제 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이 데이터들은 학습별, 수준별 교육을 나누는 데도 활용된다. 중학교 3학년은 어느 유형의 문제를 가장 많이 검색하는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어느 유형을 어려워하는지 등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다.
매스프레소는 이러한 콴다의 데이터와 서비스로 교사들의 개개인 수준별 학습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매스프레소 관계자는 “국내 한 고등학교와 콴다 프리미엄 서비스를 공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우리 기술이 교사들의 보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며 “교사가 약 30명의 학생을 일일이 수준별 교육을 하기 어려우므로 콴다의 풀이 학습과 수준별 동영상 교육을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면 교육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가 오갔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열은 높지만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베트남에서는 콴다를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매스프레소 베트남 지사에서는 자체적으로 고등 수학과 중등 영어 교재를 출판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교육 변화, 인식부터 개선돼야”
이처럼 수준별 교육과 학습을 지원할 수 있는 AI 기술은 사교육 시장에선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하며 이 같은 기술을 공교육에 적용하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공교육에 사기업 기술을 탑재하는 것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공교육 전체 분위기가 변화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2022년 교육과정 개정을 앞두고 열린 ‘소프트웨어·인공지능 교육 토론회’에서 “디지털 전환이 전방위적으로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데 우리 교육 체제는 이 변화에 대응할 자세와 체계가 잘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면서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고 새로운 역량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우리 교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경직돼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대전시에 소재한 한 고등학교 교사는 “AI와 같은 에듀테크 기술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이러한 교육을 선도하는 교사도 있는 반면, 변화에 보수적인 교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들은 교육이 트렌드를 쫓지 말고 중심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도 일리는 있지만 미래 학생들을 위해선 이젠 능동적으로 변화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넘어 학생들이 AI를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랩소장은 22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디지털 교육 대전환 비전 선포식에서 “AI가 우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우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며 AI 활용 교육을 강조했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이 자리에서 “계산기가 나오면서 숫자를 계산할 필요가 없어졌듯 AI 출현으로 지식 습득의 의미가 앞으로 감소할 수 있다”며 “AI 활용과 개발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이 강화돼야 하고 정서 교육과 인문·예술·체육 등 인성 교육도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