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露 비밀 화학무기 ‘노비초크’ 정체 밝힌 건 ‘AI’
  • 박설민 기자
  • 기사입력 2022.11.14 18:22

    화학무기 연구분야서 인공지능 기술 각광
    독성물질 성분 분석 및 해독 물질 발굴 능력 탁월
    신형 화학물질 합성에도 이용 가능… “악용 우려도”

    • /Pixabay
      ▲ /Pixabay

      국제법상 금지되곤 있지만, ‘화학무기’만큼 효율적인 무기는 없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북한이 소형핵무기 제조에 사용한 비용은 1억1000만~1억6000만 달러. 반면 1㎢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화학무기의 제작비용은 단돈 ‘5달러’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이유로 수많은 국제 테러 및 범죄단체에선 화학무기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7년 2월 발생한 ‘김정남 화학테러 암살 사건’에 사용된 것도 화학무기 ‘VX’다. 또 미 국방부에 따르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는 2015년 유럽에서 화학무기테러를 감행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위협이 점차 커지면서, 전문가들은 화학무기에 대항할 국방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인공지능(AI)’가 화학전에서 향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크다.

      ◇AI, 화학무기 성분 분석에 탁월… 해독제 성분 발굴에도 이용

      화학무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독제’다. 폭탄이나 총알처럼 물리적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므로, 적절한 해독제만 있으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성분 미상의 신형화학무기의 해독제를 제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때 AI의 강력한 연산능력은 신형화학무기 성분 분석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국내에도 AI로 화학무기 성분을 분석한 대표 연구 성과가 있다. 정근홍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노비초크 독성 분석 AI기술’이다. 노비초크(Novichok)는 1970년대 소련에서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신경작용제다. 가장 위험한 화학무기 중 하나로 꼽히는 VX가스 보다 5~8배가량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방측엔 그 화학구조가 바르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비초크의 화학 구조로 예측되는 후보 물질이 약 1만여 개에 달했는데, 각각의 구체적인 성분 분석이 이뤄지진 않은 실정이었다.

      정 교수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를 이용했다. AI모델이 학습하는 매개변수를 수동으로 입력하는 ‘하이퍼 파라미터 튜닝’ 기술을 활용했다. 복잡하긴 하지만, AI의 분석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 교수팀은 이 AI에 화학무기 관련 빅데이터와 양자 계산기법을 학습시켰다. 화학물질 독성 작용 관련 데이터는 세계화학물질 분류·표시 세계조화시스템(GHS)의 데이터를 이용했다. 그 다음 정 교수팀은 자체 개발한 AI모델을 활용해 노비초크 후보물질 1만 여종 중 일부(150여 개)를 무작위로 선정해 각각 독성을 예측했다. 이 결과 독성 성분을 70% 정확도로 분석해내는데 성공했다. 노비초크의 독성을 AI를 이용해 분석을 시도한 건 이번이 세계적으로도 처음이어서 미국국토안보부에서도 데이터 및 기술 공유를 요구해 온 상태다. 정 교수는 “합성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의 노비초크가 있을 수 있는데, 이번 실험에서 독성이 확실한 3가지 물질을 확인했다”며 “모든 종류의 노비초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실험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I는 신형화학무기 성분 분석뿐만 아니라 해독제 성분 발굴에도 사용된다. 대표 사례는 인도 웨스트 뱅골주립대(WBSU) 생명과학과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다. WBSU 연구팀은 분자 도킹분석용 AI시스템 ‘오토독3(Autodock3)’로 VX가스의 해독 물질 조합 연구를 진행했다. AI가 VX가스 물질 분자와 해독제 후보 물질의 분자 구조를 결합해 해독 반응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VX가스 등 신경작용제가 ‘아세틸콜린분해효소(AChE)’와의 결합을 억제하는 물질로는 옥심의 일종인 ‘HI-6’가 가장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AChE는 체내 신경전달물질을 통제하는 효소다. 몸에 꼭 필요하지만,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 생물의 신경작용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이때 신경작용제는 AChE가 분해되지 못하게 만들고, 체내 신경마비 등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살충제도 이와 유사한 원리다.

      WBSU 연구팀은 “HI-6는 VX가스가 AChE에 작용하는 것을 억제하는데 우수한 효과를 나타났다”며 “특히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VX 해독제인 아트로핀에 HI-6를 함께 사용하면 독성 중화효과가 더욱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1분에 화학무기 4만 개 제조… ‘양날의 칼’ 우려도

      AI의 뛰어난 분석 능력이 오히려 화학무기 제조에 사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4월 미국의 제약회사 ‘컬래버레이션스 제약’이 제작한 AI 모델 ‘메가사인(MegaSyn)’은 단기간 수만 가지 화학무기 후보 물질을 발굴하기도 했다. 메가사인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물질을 찾기 위해 제작된 장·단기 메모리(LSTM) 신경망 기반 AI모델이다.

      컬래버레이션즈 제약 연구팀은 메가사인에 인체 유해 물질을 배제하는 알고리듬도 학습시켰다. 그 결과, 메가사인은 우수한 신약물질을 찾아냈으나, 동시에 4만 종에 달하는 화학무기 후보 물질이 발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걸린 시간은 단 6시간에 불과했다. AI 입장에서 보면 ‘이 물질은 위험합니다’라고 인간한테 알려준 셈이다. 이 4만 가지 화학무기 성분 중에는 VX가스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신경작용제도 다수 포함됐으며, 이중 50가지는 기존 VX보다도 위험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컬래버레이션스 제약 측은 관련 연구 자료 라이브러리를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메가사인의 기술 사용도 제한한다는 계획이다.

      연구팀은 “우리가 찾아낸 독성물질은 원래 독성을 피하고자 했던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AI의 치료 후보 물질 발굴 능력이 뛰어날수록 독성물질 설계 능력도 우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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