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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 (1) : 감정과 이성은 구분되어 있는가
  • 이청호 상명대학교 교수
  • 기사입력 2022.01.10
    • 이청호 상명대학교 교수
      ▲ 이청호 상명대학교 교수

      감정과 이성의 이분법은 전통적으로 고수하던 인간됨을 파악하는 기준이었다. 우리는 흔히 감정적 혹은 감성적인 사람은 덜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은 덜 감성적이거나 감정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감정보다는 이성의 능력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강조되어 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예술활동의 종사자인 시인들을 추방하자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플라톤이 진리를 관조하게 하는 이성의 능력과는 달리 예술은 우리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고 거짓을 종용함으로써 혼란을 불러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플라톤 이후 이성적 사고는 오래도록 인간 본연의 대표적인 능력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해 이러한 시각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수학적 계산, 체스, 바둑 등 많은 이성적 사고의 영역에서 기계 혹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 감히 대결조차 시도하기 힘든 지경이다. 그리고 이제는 서서히 감정의 모래사장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인간을 향해 저 멀리서 인공지능과 기계의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우리는 영화나 소설 등에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미래사회를 묘사해 왔으며 우수한 능력을 갖춘 로봇이나 인공지능은 미래사회의 단골메뉴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덧입혀진 로봇은 지적 능력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아이, 로봇(I, Robot)>(2004)은 2035년의 미래의 지구에서 인간과 지능을 갖춘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를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형사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자유의지와 감정을 지닌 로봇인 아이로봇을 만나게 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전개된다. 아이로봇은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뿐 아니라 자신의 생존에 대한 욕구, 동료애 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아이로봇의 인공지능만 욕구나 동료애를 가진 것은 아니다. 또한 영화 <A.I.>에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이 어린 로봇은 인간 아이에게 시기나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수천 년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되어 엄마를 만나고 싶다고 소원을 빌 정도로 강한 염원의 소유자이기도 한다.

      이처럼 인공지능 로봇이 감정을 소유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상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될 것인가를 논하기보다는, 그렇게 되는 때는 언제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 본고에서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소유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앞서, 먼저 상식과도 같은 감정과 이성의 이분법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감정과 이성의 이분법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의견 중 하나는 이성적인 합리성이 오히려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이며, 이러한 주장의 대표적인 주창자는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이다. 다마지오는 그의 저서 『Decartes의 오류(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1994)에서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의 행동을 연구한 실험을 분석한다. 다마지오가 분석한 흥미로운 사례 중 하나는 1848년에 심각한 사고로 전두엽 피질의 일부가 파괴된 게이지(Phineas P. Gage, 1823–1860)의 사례였다. 게이지는 미국 철도 건설 현장 감독이었으며, 작업 도중 드릴로 뚫은 구멍에 쇠로 만든 거대한 철침을 넣는 과정에서 철침이 머리를 완전히 관통하여 뇌의 왼쪽 전두엽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놀랍게도 게이지는 사고 직후 신속한 응급조치를 통해 생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성격과 행동에 심각한 변화를 보이게 되었고 이는 남은 생애 12년 동안 지속되게 된다. 사고 이후 게이지는 무책임하고 무례한 행동을 자주 하고 어린애처럼 행동하여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서커스 쇼에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게이지의 사례는 뇌의 특정 부분에 대한 손상과 관련하여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뇌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최초의 사례로 생각된다. 이로 인해 뇌가 특정한 정신적 변화를 어떻게 유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러한 논의 중 하나는 게이지가 감정의 변화를 보인 원인에 대한 논의이다. 혹자는 게이지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극심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고 위와 같은 행동의 변화를 보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게이지에 대한 사망 직전 보고서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그가 경험한 심각한 정신적 변화는 일시적이었고 사고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언급하였다고 한다. 실제와 달리 게이지의 행동 변화가 심각하게 과장되고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은 게이지의 사고 이후 성격 변화는 뇌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다마지오도 이러한 입장을 고수한다. 게이지 사례에 대해 다마지오는 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관찰한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정상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힘들뿐 아니라 가장 단순한 합리적인 결정조차 내리기 힘들다.

      다마지오가 언급하는 또 다른 예는 엘리엇(Elliot)이라는 환자의 사례이다. 엘리엇은 이마 바로 뒤에 뇌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수술 이후 행동에 있어 변화를 보이게 된다. 엘리엇은 유능한 변호사였으며 수술 이후에도 IQ 테스트를 통해 측정한 지능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처럼 사소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다마지오는 엘리엇이 기억력, 논리력, 인지 능력 등이 손상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예를 들어 엘리엇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전혀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외부 관람자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다마지오는 엘리엇의 이러한 행동이 뇌수술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으며, 수술 과정에서 감정적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에 손상이 발생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엘리엇의 사례를 통해 다마지오는 생각하는 두뇌가 올바르게 작동한다 하더라도 감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선을 선택하는 추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결국 감정의 부재는 추론 메커니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마지오의 주장은 이성의 추론적 메커니즘이 감정 개입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이러한 결정의 과정에는 이성적 추론 뿐 아니라 감정적인 개입이 동시에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흔히 감정 지능이라고 불리는 EQ(감정 지수)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게 되면 가장 감정적인 사람이 가장 지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결국 다마지오의 주장은 인간의 삶에서 감정이 이성은 분리되기 어렵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나타낸다. 감정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활동에서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인간의 삶은 감정의 개입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감정과 이성뿐 아니라 우리가 본능이라고 여기는 영역도 사실은 구별하기 어려운 연속적인 인간의 특성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감정을 갖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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